오랜만에 조조 영화로 만난 '썬더볼츠'. 요즘 마블의 행보를 보면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막상 보고 나니 "이래서 영화는 직접 봐야 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격투 위주의 캐릭터들이 모여 도대체 어떤 합을 보여줄지 예상조차 안 됐는데, 기대 이상의 팀워크와 감동을 선사했다.
1. 루저들의 반란, 빛나는 순간을 만들다
처음에 캐릭터 라인업을 봤을 때 솔직히 '이 조합으로 뭘 어떻게 할까?' 의구심이 컸다. 블랙 위도우의 옐레나(플로렌스 퓨), 쓸모없어진 레드 가디언(데이빗 하버), 캡틴 타이틀을 잃은 존 워커(와이어트 러셀)... 모두 과거의 영광을 잃거나 상처로 가득한 캐릭터들이니까.
근데 이게 웬걸? 영화는 그들의 약점을 당당히 드러내고 오히려 강점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진한 감동이 느껴졌다. 특히 옐레나가 언니 나타샤를 떠나보낸 후 공허함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상실감이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키는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이들이 '슈퍼 파워'가 아닌 '인간미'로 승부하는 점이다. 어벤져스가 천하무적 초능력으로 압도했다면, 썬더볼츠는 서툴고 부족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의지로 승부한다. 이건 마치 우리네 인생과도 참 닮아있어서 더 공감이 갔다.
2. 빌런이 아닌 '또 다른 나', 진짜 적은 내 안에 있다
주변에서 시사회 호평이 있었다고 해도 사실 나는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영화 속 '밥'(루이스 풀먼)이라는 빌런의 설정이 정말 신선했다. 이 캐릭터는 단순히 물리쳐야 할 적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잠재된 어둠을 상징한다고 느꼈다.
'센트리'에서 '보이드'로 변하는 과정은 마치 우리 안의 어두운 면이 통제력을 잃을 때의 모습과 같았다. 이런 깊이 있는 빌런 설정이 단순한 슈퍼히어로물을 뛰어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후반부에 보이드와 싸우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이겨라!'하고 속으로 응원했다. 나약한 인간들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 어둠과 싸우는 모습이 너무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웠으니까. 그 순간 나는 엔드게임 때처럼 마블에 다시 빠져들고 있었다.
3. 웃음과 감동 사이, 한국적 미학까지 담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오랜만에 마음껏 웃었다. 마블 세계관이 무거워진 이후로 이렇게 깔깔 웃어본 적이 없었는데, 레드 가디언과 존 워커의 티격태격하는 케미스트리가 환상적이었다. 특히 모두가 모인 어느 장면(스포일러라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에서는 극장 전체가 웃음바다가 됐다.
제목의 '*'가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는데, 영화 중간에 레드 가디언의 입을 통해 밝혀지는 그 순간이 묘하게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축구팀 이름에서 시작해 이제는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가 된 이들의 성장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놀랍게도 한국계 스태프들의 활약이 돋보였다는 점도 알게 됐다. 봉준호, 박찬욱 감독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제이크 슈레이머 감독의 인터뷰를 보고, 몇몇 장면에서 느꼈던 낯익은 미학적 감각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이성진 감독의 각본 참여, 해리 윤 편집감독, 그레이스 윤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감각이 더해져 시각적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쿠키 영상은 꼭 끝까지 봐야 한다! 첫 번째도 좋지만 크레딧 완전히 끝난 후 나오는 두 번째 쿠키가 앞으로의 마블 세계관을 예고하는 중요한 장면이니 놓치지 말자.
이제 우리가 알던 어벤져스는 없다. 그렇지만 '누구든 영웅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썬더볼츠를 보며, 나는 다시 한번 마블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다. 화려한 액션보다는 인간미 넘치는 드라마에 중점을 둔 이 영화가, 앞으로 마블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 같아 기대가 크다. 4월 30일 개봉한 '썬더볼츠*', 꼭 극장에서 경험해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