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희곡(Play)’을 읽는 것은 마치 건축가가 설계도를 보며 완성된 빌딩을 상상하는 것과 같은 짜릿한 경험입니다. 하지만 평소 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대사와 지문만으로 이루어진 희곡은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오늘은 텍스트 속에 숨겨진 입체적인 무대를 발견하는 ‘희곡 읽기의 기술’을 전해드립니다.
1. 지문(Stage Direction)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다
희곡에서 괄호 안에 적힌 지문은 작가가 연출가와 배우에게 보내는 은밀한 신호입니다. 소설처럼 인물의 심리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대신, “물을 한 잔 마신다”, “먼 곳을 응시한다” 같은 행동으로 마음을 대변합니다.
- 읽기 팁: 지문을 읽을 때 ‘왜 이 타이밍에 이런 행동을 하는가?’를 자문해 보세요. 대사로는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지문에는 "상대방의 눈을 피한다"라고 적혀 있다면, 그 인물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수줍어하는 것입니다. 지문은 대사의 진실성을 검증하는 척도가 됩니다.
2. '행간(Between the lines)'을 읽는 즐거움
희곡의 정수는 대사 사이에 흐르는 정적과 침묵에 있습니다. 이를 '서브텍스트(Subtext)'라고 부릅니다. 인물이 뱉는 말 뒤에 숨겨진 진짜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희곡 읽기의 핵심입니다.
- 예를 들어,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라는 평범한 대사도 상황에 따라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싶다"거나 "당신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연출가가 된 기분으로 이 대사를 어떤 톤으로 뱉을지 상상하며 읽어보세요.
3.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상상력으로 채우기
소설은 장소의 이동이 자유롭지만, 희곡은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을 전제로 합니다. 작가가 설정한 '무대 배경' 묘사를 꼼꼼히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 팁: 극이 시작되기 전 '무대 설명' 파트를 공들여 읽으세요. "낡은 소파, 먼지 쌓인 책장, 깨진 거울" 같은 묘사는 그 집에 사는 인물들의 삶을 시각적으로 미리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머릿속에 가상의 무대 세트를 세우고 그 안에서 인물들을 움직여보세요.
4. 입 밖으로 내어 읽기(낭독)의 힘
희곡은 눈으로 읽기 위해 쓰인 글이 아니라, 입으로 뱉어지기 위해 쓰인 글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이 있다면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 문장의 호흡이 어디서 끊기는지, 어떤 단어에서 힘이 들어가는지 직접 느껴보면 평면적이었던 글자가 입체적인 감정으로 변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셰익스피어 같은 고전 희곡은 대사의 운율감이 살아있어 낭독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핵심 요약]
- 지문은 캐릭터의 내면을 보여주는 시각적 언어이므로 대사만큼 중요하게 읽어야 합니다.
- 서브텍스트를 통해 인물이 말하지 않는 진짜 속마음을 추론하는 것이 희곡 읽기의 묘미입니다.
- 무대 설정을 머릿속에 구체화하여 공간적 제약 안에서 일어나는 긴장감을 즐겨보세요.
- 낭독은 텍스트의 리듬감을 파악하고 캐릭터에 몰입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12편에서는 최근 가장 핫한 공연 트렌드를 소개합니다. '이머시브 공연(Immersive Theater)이란? 관객이 주인공이 되는 시대'를 통해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사라진 새로운 예술 형식을 파헤쳐 봅니다.
[오늘의 질문]
혹시 읽어보고 싶은 희곡이나, 연극으로 본 뒤 원작 대본을 찾아보고 싶었던 작품이 있으신가요?